식민 지배 사과·배상 유럽 비교 2026: 7개국 ‘사과·유감·거부’와 돈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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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20일, 프랑스 대통령실은 알제리 전쟁 기억에 관한 스토라 보고서를 받은 날 “참회도 사과도 없다(ni repentance ni excuses)”고 밝혔습니다. 거부의 근거로 든 것이 뜻밖이었습니다 — 보고서 속 “일본이 한국·중국에 한 사과가 화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례였습니다. 이 글에서는 식민 지배 기간, 유럽 각국의 사과·유감·거부, 지불한 돈의 ‘이름’, 그리고 한국에 남은 사과 문서들을 하나하나 비교해 봅니다.

한눈에 보기

  • 식민 지배 기간: 알제리 132년, 인도네시아 149년(국가 직할 1800~1949), 인도 89년(영국 왕실 직할), 한국 35년(1905년 을사늑약부터 세면 40년).
  • 오래 지배한 나라일수록 공식 사과가 드문 경향 — 프랑스는 알제리에 공식 거부(2021), 벨기에·영국 왕실은 ‘유감’까지. 사과한 이탈리아(리비아)·독일(나미비아)은 지배 기간이 30년 남짓.
  • 독일은 나미비아에 11억 유로(30년) 를 ‘재건·개발 지원’이라 부르고 “법적 보상 청구권은 나오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2026년 10월 현재 공동선언은 서명 전입니다.
  • 이탈리아 → 리비아 50억 달러(20년, ‘우호·협력’), 영국 → 케냐 피해자 5,228명 1,990만 파운드(합의금·소송비 포함), 1965년 한일 무상 3억 + 유상 2억 달러(‘경제협력’).
  • 한국엔 1993 고노·1995 무라야마·1998 김대중–오부치·2015 위안부 합의 등 사과 문서가 여럿 있지만, 법적 배상 책임을 두고 두 정부 입장은 아직 다릅니다.

프랑스가 알제리에 ‘사과 거부’한 날

2021년 1월 20일은 프랑스 대통령실이 역사학자 뱅자맹 스토라의 보고서를 받은 날입니다. 알제리 전쟁(1954~1962)과 식민 지배 기억을 어떻게 다룰지 22개 권고를 담은 보고서였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공식 발표한 것은 “참회도 사과도 없다”였습니다. AFP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 근거는 보고서 속 일본이 한국·중국에 한 사과가 화해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사례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 뒤의 행보입니다. 같은 해 9월 20일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편에서 싸운 알제리인(하르키) 에게 “용서를 구한다”고 했습니다. 알제리 사람들 전체에 대한 사과가 아니었습니다. 2017년 후보 시절 발언 “식민지화는 인도에 반한 범죄”도 대통령 공식 입장은 아니었습니다. 이 글의 질문은 여기서 출발합니다 — 유럽은 자신들의 식민 지배에 어디까지 사과했을까요?

먼저, 식민 지배는 얼마나 길었나

식민 지배 기간을 비교할 때 가장 먼저 조심할 것이 ‘시작을 어디로 보느냐’ 입니다. 네덜란드의 “350년 인도네시아 지배”는 동인도회사 설립(1602)부터 센 과장된 숫자이고, 포르투갈의 “500년 앙골라”도 수백 년간 해안 거점만 있던 시기를 통째로 포함한 말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국가가 직접 통치한 기간을 기준으로 정리한 것입니다.

한국은 1910년 한일병합부터 1945년 광복까지 35년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을 시작점으로 삼으면 40년이 됩니다. 흔히 쓰는 ‘일제 36년’은 1910-08-29 ~ 1945-08-15로 계산하면 34년 11개월이기 때문에, 앞뒤 햇수를 포함해 센 표현에 가깝습니다. 비교 대상 10개국 중 한국의 지배 기간은 짧은 편에 속합니다.

오래 지배한 나라일수록 사과는 드물었다

그러면 이 긴 지배 뒤에 사과가 따라왔을까요? 자료의 표를 그대로 옮기면, 적어도 아래 사례에서는 지배가 길수록 공식 사과가 드문 경향이 나타납니다. 가장 오래(149년) 지배한 네덜란드도 노예제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폭력에 한정해서만 사과했습니다. 다만 이 경향은 이 표의 범위에서 보이는 것일 뿐, 사과를 할지 말지 결정하는 이유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피해국(지배국)지배 기간공식 사과
알제리(프랑스)132년공식 거부(2021)
콩고민주공화국(벨기에)75년없음 — 국왕 ‘가장 깊은 유감'(2020)
케냐(영국)68년없음 — 정부 ‘진심으로 유감'(2013)
리비아(이탈리아)32년사과(2008)
나미비아(독일)31년사과·용서(2021, 미서명)
출처: AFP(2021), 아프리카뉴스(2020), gov.uk 의회 성명(2013-06-06), MERIP(2009), 독일 외교부(2021-05-28). 인도·베트남·필리핀도 공식 사과가 없고, 네덜란드는 노예제(2022·2023)와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폭력(2020·2022)에 한정해 사과했습니다.

표 밖에서 조금 더 봅시다. 네덜란드는 1949년이라 해 오던 인도네시아 독립 시점을 2023년에야 1945년 8월 17일로 “완전히, 유보 없이” 인정했습니다. 프랑스는 알제리가 아니라 아이티로부터 돈을 받은 쪽입니다 — 1825년 독립 승인 대가로 1억5천만 금프랑(1838년 9천만으로 감액)을 받았고, 2025년 마크롱이 “부당했다”고 인정했지만 사과·배상은 없었습니다.

‘사과’와 ‘유감’은 다르다

유럽 왕실·정부가 자주 쓴 단어는 ‘사과(apology/excuses)’가 아니라 ‘유감(regret)’입니다. 유감은 잘못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말입니다. 영국 정부가 가장 선명한 예입니다 — 2013년 케냐 마우마우 피해자 합의를 발표한 같은 성명에서 “진심으로 유감”이라고 하면서 “법적 책임은 계속 부인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누가언제쓴 말
벨기에 국왕 → 콩고2020가장 깊은 유감(plus profonds regrets)
영국 정부 → 케냐2013진심으로 유감(sincerely regrets)
찰스 왕 → 케냐2023가장 큰 슬픔과 가장 깊은 유감
독일 외무장관 → 나미비아2021용서를 구한다(um Vergebung bitten)
네덜란드 국왕(노예제)2023국왕이자 정부의 일원으로서 사과(excuses)
출처: 아프리카뉴스(2020), gov.uk(2013-06-06), 영국 왕실 보도(2023, 검색요약), 독일 외교부(2021-05-28), 네덜란드 왕실 연설문(2023-07-01).

벨기에의 사례는 ‘사과’라는 단어의 무게를 보여 줍니다. 2022년 벨기에 하원 식민 과거 특별위원회는 의회 사과 결의를 두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종료됐습니다. 반대 측 논리는 간단했습니다 — “사과하면 배상 요구의 문이 열린다.” 다만 벨기에 법원은 다른 길을 열었습니다. 2024년 브뤼셀 항소법원이 1948~1952년 콩고에서 태어난 혼혈아 강제 분리를 “인도에 반한 범죄“로 보고 피해 여성 5명에게 배상을 명했고, 2026년 5월 파기원(대법원)에서 확정됐습니다.

돈을 내도 ‘배상’이라 부르지 않았다

사과가 어려우면 돈이라도 쉬울까요 —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돈을 낸 나라들도 그 돈을 ‘배상(reparations)’이라 부르는 것은 피했습니다. 이름이 ‘재건·개발’, ‘우호·협력’, ‘합의금’, ‘교육 기금’, ‘경제협력’으로 조금씩 바뀌어 있을 뿐입니다.

누가 → 누구에게금액붙인 이름
독일 → 나미비아11억 유로(30년)재건·개발 지원
이탈리아 → 리비아50억 달러(20년)우호·협력
영국 → 케냐 피해자1,990만 파운드(피해자 5,228명, 소송비 포함)합의금(법적 책임 부인)
네덜란드(노예제)2억 유로교육 기금
일본 → 한국(1965)무상 3억 + 유상 2억 달러경제협력
출처: 독일 외교부(2021-05-28), MERIP(2009), gov.uk(2013), 네덜란드 왕실·NBC(2022·2023), 한일 청구권·경제협력협정(1965) 제1조.

독일–나미비아 사례는 1965년 한일 협정과 구조가 묘하게 닮았습니다. 독일 외교부 성명(2021-05-28)은 1904~1908년 헤레로·나마족 학살을 “오늘의 관점에서 제노사이드“로 인정하면서도, 11억 유로에 대해서는 “법적 보상 청구권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고 못 박았습니다. 공동선언 초안의 “모든 재정적 측면이 정리된다“는 문구는 1965년 한일 협정 2조의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과 겹칩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26년 10월에도 공동선언은 서명 전입니다 — 피해 부족 대표·야당 반대로 나미비아 의회가 승인하지 않고 있습니다.

1965년 한일 협정의 무상 3억 달러도 현금이 아니었습니다. 협정 1조는 “일본의 생산물과 일본인의 용역”으로 10년에 걸쳐 주도록 적혀 있습니다. 협정 이름 자체가 “청구권 문제 해결 및 경제협력 협정“입니다.

제노사이드로 벌어진 측량할 수 없는 고통에 비추어, 우리는 희생자의 후손에게 용서를 구한다. … 이러한 지원의 성격을 고려할 때, 과거 사건에 대한 법적 보상 청구권은 여기서 나오지 않는다.

독일 외교부 성명(2021-05-28, 하이코 마스 외무장관)

한국 — 사과 문서는 있는데, 왜 화해는 안 됐나

흔히 “일본은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문서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 대한 일본의 사과 문서는 유럽 어느 나라보다도 여러 번 나왔습니다. 반대로 “일본은 다 사과·배상했다”는 말도 한쪽 입장만 담은 표현입니다. 쟁점은 사과의 유무가 아니라, 법적 배상 책임과 그 뒤 발언의 일관성에 있습니다.

연도무엇핵심 문구
1993고노 담화위안부 모집·이송·관리에 군 관여, ‘사죄와 반성’
1995무라야마 담화식민 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1998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식민 지배로 준 손해·고통에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
2010간 담화식민 지배가 ‘한국인들의 뜻에 반해’
2015위안부 합의총리 명의 사죄와 반성,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1회 출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2018대법원 강제징용 판결일본 ‘협정 위반’ 반발, 한국 ‘불법행위 위자료는 협정 밖’
출처: 일본 외무성 담화·공동선언 원문(인터넷 기록보관소 사본으로 열람), 한일 청구권·경제협력협정(1965), 신일철주금 사건 대법원 판결(2018-10-30).

2015년 위안부 합의의 10억 엔 숫자는 일본 정부 영문 발표문엔 적혀 있지 않습니다(“예산으로 1회 출연”만). 10억 엔은 당시 일본어 회견과 양국 언론 보도 기준입니다. 2016년 세워진 화해치유재단은 2018년 해산이 결정돼 2019년 7월 해산됐고, 잔액은 약 58억 원이었습니다. 다만 한국 정부가 합의 자체를 공식 파기하지는 않았습니다.

2018년 10월 대법원은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위자료를 확정하며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 위자료는 1965년 협정 밖“이라는 논리를 세웠습니다. 일본 정부는 즉시 “협정 2조의 명백한 위반”이라 반발했고, 2023년 3월 한국 정부는 행안부 산하 재단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대신 지급하는 해법을 발표했습니다. 재원은 국내 기업 등의 자발적 기여입니다. 원고 15명 중 11명이 수용, 2024년 10월 양금덕 할머니도 수용했지만, 일부 유족은 거부하고 미쓰비시 손자회사 채권 추심을 이어가고 있습니다(2025년 2월 1심 승소).

스토라 보고서가 알제리 사과 거부의 근거로 든 “사과했지만 화해로 이어지지 않은 사례“는 이 맥락을 가리킵니다. 다만 보고서는 왜 그렇게 됐는지 — 사과 자체가 효과가 없었다는 뜻인지, 그 사과가 돈·법적 책임과 분리됐기 때문인지 — 는 길게 다루지 않습니다. 프랑스가 이 사례를 가져다 쓴 방식도 그 자리에서 논란이 됐습니다.

유럽도 대부분 ‘유감’까지

6개 사례를 한 장에 정리하면, 식민 지배 사과·배상은 한일 사이만의 어려운 과제가 아니라, 식민지를 가졌던 나라 대부분이 피해 온 문제였다는 것이 보입니다.

어디까지 갔나나라(대상)
사과 + 돈독일(나미비아, 미서명) · 이탈리아(리비아)
사과, 범위 한정네덜란드(노예제·독립전쟁 폭력)
유감 + 돈영국(케냐)
유감만벨기에(콩고) · 영국(인도)
공식 거부프랑스(알제리)
독일–이스라엘(1952, 35억 마르크)은 식민 지배가 아니라 나치 범죄 배상이라 비교에서 뺐습니다.

‘사과 + 돈’에 가 있는 두 사례도 완결은 아닙니다. 독일–나미비아 공동선언은 2026년 10월 현재 서명 전이고, 피해 부족 대표·야당은 “부족하다”며 고등법원에 무효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탈리아–리비아의 50억 달러 사업은 2011년 리비아 내전 이후 사실상 중단됐고, 베를루스코니 자신이 목적을 “불법 이민은 줄이고 석유는 늘리고“라고 말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습니다.

숫자를 읽을 때 조심할 점

  • 식민 지배 기간은 ‘시작을 어디로 보느냐’에 따라 두 배까지 벌어집니다. 네덜란드 “350년 인도네시아”, 포르투갈 “500년”은 과장 표현이고, 한국 ’36년’도 1910-08-29 ~ 1945-08-15 기준으로는 34년 11개월입니다.
  • 독일 11억 유로는 ‘배상’이 아닙니다. 독일 정부 공식 표현은 ‘재건·개발 지원’이고, 공동선언은 미서명 상태입니다. ‘상한 없는(uncapped) 11억 유로’라는 표현은 검색 요약에만 보여 쓰지 않았습니다.
  • 영국이 케냐에 사과했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유감 표명과 합의금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부인했습니다. 1,990만 파운드에는 소송비가 섞여 있어 피해자 5,228명으로 나눠 ‘1인당 금액’을 말하면 틀립니다.
  • ‘마크롱이 알제리에 사과했다’도 틀렸습니다. 2021년 “용서를 구한” 대상은 프랑스 편에서 싸운 하르키였고, 알제리에는 공식 거부가 그대로 서 있습니다.
  • 독일–이스라엘 1952년 룩셈부르크 협정(35억 마르크)은 식민 지배 배상이 아닙니다. 홀로코스트에 대한 배상이라 성격이 다르고, 이 글의 비교에서 뺐습니다.

정리

표를 다 들여다보고 나면 한 가지가 또렷해집니다. 식민 지배가 길수록 공식 사과는 드물었고, 돈을 낸 나라도 그 돈을 ‘배상’이라 부르지 않았으며, 유럽 왕실·정부 대부분은 ‘유감’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췄습니다. 한국은 지배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고 사과 문서는 가장 많은 쪽이지만, 그 사과가 돈·법적 책임과 어떻게 묶이는지에 대한 두 정부의 해석이 다른 자리에서 ‘화해’가 멈춰 있습니다. 프랑스는 그 지점을 짚어 자신들의 사과를 거부했습니다. 사과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이, 유럽의 사례들에서도 여러 번 확인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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